좋은 詩

여름 일기 /이해인

청원 이명희 2018. 6. 29. 10:13


    제프리 T 라슨

    여름 일기 / 이해인

    1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매일을 가꾸며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 번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 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디어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오고 싶다



    2
    오늘 아침
    내 마음의 밭에는
    밤새 봉오리로 맺혀있던
    한 마디의 시어가
    노란 쑥갓꽃으로 피어 있습니다.
    비와 햇볕이 동시에 고마워서
    자주 하늘을 보는 여름
    잘 익은 수박을 쪼개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초록의 기쁨이여
    우리가 사는 지구 위에도
    수박처럼 둥글고 시원한
    자유와 평화 가득한 여름이면 좋겠습니다.
    오는 아침 나는 다림질한 흰 옷에
    물을 뿌리며 생각합니다.
    우울과 나태로 풀기없던 나의 일상을
    희망으로 풀먹여 다림질해야겠음을
    지금쯤 바쁜 일터로 향하는
    나의 이웃을 위해
    한 송이의 기도를 꽃피워야겠음을...



    3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4
    떠오르는 해를 보고
    멀리서도 인사하니
    세상과 사람들이
    더 가까이
    웃으며 걸어옵니다.
    이왕이면
    붉게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어둡고 차갑고
    미지근한 삶은
    죄가 된다고
    고요히 일러주는 나의 해님
    아아,
    나의 대답은
    말 보다 먼저 또 오르는
    감탄사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