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詩

초겨울 저녁 / 문정희

청원 이명희 2017. 11. 17. 00:06

Robert Kipniss




        초겨울 저녁 / 문정희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 버리고 정갈해진 노인같이
        부드럽고 편안한 그늘을 드리우고 앉아

        바람이 불어도
        좀체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성한 꽃들과 이파리들에 휩쓸려 한 계절
        온통 머리 풀고 울었던 옛날의 일들

        까마득한 추억으로 나이테 속에 감추고
        흰 눈이 내리거나

        새가 앉거나 이제는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저 대지의 노래를 조금씩
        가지에다 휘감는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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