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詩

어둠의 영역 /조용미 외#

청원 이명희 2018. 5. 6. 18:21

 

 

어둠의 영역 /조용미 여긴 아주 환한 어둠이다 조금 다른 곳으로 가 볼까 천천히 휘익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처럼 나도 9년 6개월을 날아서 걸어서 그곳으로 갈 수 있다면 수차례의 동면 과정을 거쳐 자다 깨다 하며 어둠이라는 심연에 다다를 수 있다면 당신은 명왕성보다 멀어야 하지 조금 더 멀어야 하지 누구도 당신의 아름다움을 훼손할 수 없다 아름다움의 영역에 별보다 죽은 자들이 더 많으면 곤란하다 빈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 둠 속 저수지 근처 폐사지의 삼층석탑, 차창으로 얼핏 보았던 과일을 감싸고 있는 누런 종이들이 내뿜는 신비한 기운 이런 것들에 왜 잔혹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몸서리쳐야 하는지 슬픔이 왜 이토록 오래 나의 몸에 깃들어야 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을 것만 같다 당신은 명왕성보다 멀어서 아름답고 나는 당신을 만날 수 없다 당신과 내가 이 영역에 함께 있다

 

 

 

 

 

기쁨이 열리는 창 / 이해인 나는 기쁨이란 단어를 무척 사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 모든 것들이 나에겐 다 신기하게 여겨져 행복했고 놀라운 것들이 하도 많아 삶이 지루하지 않았다. 나의 남은 날들을 기쁨으로 물들여야지 하고 새롭게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마음의 창에 기쁨의 종을 달자. 사랑하는 이들을 기쁨으로 불러모으자. 슬픈 이들, 우울한 이들, 괴로운 이들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발견하도록 돕는 기쁨천사가 될 순 없을까? 어쩌면 기쁨은 우리가 노력해서 구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욕심을 조금만 줄이고 이기심을 조금만 버려도 기쁠 수 있다. 자만에 빠지지 말고 조금만 더 겸손하면 기쁠 수 있다. 남의 눈치채지 못하는 교만이나 허영심이 싹틀 때 얼른 기도의 물에 마음을 담그면 기쁠 수 있다.

 

 

 

 

 

우 산 ... 도종환 혼자 걷는 길 위에 비가 내린다 구름이 끼인 만큼 비는 내리리라 당신을 향해 젖으며 가는 나의 길을 생각한다 나도 당신을 사랑한 만큼 시를 쓰게 되리라 당신으로 인해 사랑을 얻었고 당신으로 인해 삶을 잃었으나 영원한 사랑만이 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되찾게 할 것이다 혼자 가는 길 위에 비가 내리나 나는 외롭지 않고 다만 젖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먼 거리에 서있어도 나는 당신을 가리는 우산이고 싶다 언제나 하나의 우산 속에 있고 싶다.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정채봉 쫓기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꼭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마음의 빈집 ... 김재진 붙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붙들어 놓겠습니다. 못 박아 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못 박아 놓겠습니다. 그대 보내고 잊었던 세월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마음을 묶어놓을 데 없어 드러누울 집 한 채 없이 빈 몸으로 삽니다.

 

 

'좋은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녀는 여인으로 /유안진  (0) 2018.05.09
새로운 길 / 윤동주 외 #  (0) 2018.05.09
그때 그때 아프기로 해 /윤용인 외 #  (0) 2018.05.06
용서받은 이유 /유안진  (0) 2018.05.04
5월 시 모음 #  (0) 2018.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