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詩

찬비 내리고 /나희덕

청원 이명희 2018. 8. 27. 10:42

 

 




찬비 내리고 / 나희덕


'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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