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詩

이상국 시모음

청원 이명희 2018. 8. 30. 18:24

이상국 詩모음  

마음이 고플 때는 국수가 먹고 싶다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돌아가신 할머니 기리며 제사의 절차·의미 되새겨 

 

 

제삿날 저녁


장작을 집어넣을 때마다
불꽃들이 몸서리치며 튀어오른다
서로의 몸뚱이에 불을 붙이면서도
저렇게 태평스러운 불길들
가마솥의 물이 끓는다
뜨겁다고 끌어안고 아우성이다
저것들도 언젠가 얼음이 되리라
지난날 어머니와 내가
나란히 앉았던 아궁이 앞에
오늘은 아들과 함께
하염없이 불꽃을 바라본다
우리는 저 불꽃 속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혹은 물에서 왔을까
장작불 앞에서
술 취한 사람처럼 벌건 얼굴로
끓는 물소리를 듣고 있는데
뜬김 자욱하게 서린 부엌 안에
우리말고 또 누가 있는 것 같다

 

 

펜화, 기다림의 미학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하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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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에서 개와 싸우다


해남까지 갔다가
너무 멀리 온 것 같아 돌아선 길
진주 포항 지나 영덕(迎德)에 오니 해가 진다
생은 길고 겨울 해는 짧으니
오늘은 여기서 묵어 가자

누군가 버스 뒤켠에서
엉덩이를 빼고 오줌을 누고 있는 터미널
어둑어둑한 마당을 나오는데
내가 절 보는 마음을 어떻게 알았던지
한 쪽 다리를 저는 개 한 마리
연신 힐끔거리며 어둠속으로 들어간다

저것도 나처럼 몸 때문에 마음을 버렸구나
삶아 썰면 열댓 근은 되겠다

나도 여기까지 왔다

모든 생은 얼마쯤 불구이고
불구는 불구를 피하고 싶어하므로
겨울 남해를 돌며 어떤 날은 처음 가 본 역에서
찐 달걀을 먹으며 낯선 사람들은 바라보기도 하다가
강진이나 벌교 장바닥에서 낮술에 흔들리며
어물쩍 나를 버려두고 왔으나

어둠이 발목을 잡는 영덕
불과 오백리 북쪽에 집을 두고
저 불학무식한 것에게 마음을 들키고 나서
허름한 목욕탕 어머니 자궁 같은 욕조에
다시 백열 근짜리 생을 눕힌다

 

 

속초수복탑#속초시외버스터미널#걸어서 5분거리 

 

 

수복탑*을 떠나며


눈물이나 펑펑 쏟으며 가자
마흔 해 동안
동명동 바닷바람에 에미는 머리가 다 세었다
한눈 팔지 말고 날래 앞장 서거라
떠나는 마당에 무엇인들 마음에 걸리지 앟으랴
손바닥만한 밭뙈기 하나
장난감 같은 배 한 척 못 가지고
물질하며 춥게 살던 속초를 잊고
서러움과 분노도 파도 속에 던져버리고
그저 눈물이나 펑펑 쏟으며 가자
모래기 흰고개 넘어 봉포 지나 거진쯤에서 하루 묵어도
글피쯤이면 통천 닿겠지비
눈물 펑펑 쏟으며 날래 가자


* 모자가 북쪽을 향해 가는 모습의 수복 기념탑으로 속초에 있다.

 

 

아차산 망우산 등산 -망우리 공동묘지-  

 

 

성묘


- 야덜아 내 죽거든 태워서 물치 바다에나 뿌려다오


어머니는 살아생전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선산이 수만평이나 있고 아들자식들이 모두 이름 석자는 쓰고

사는 집에서 될 법이나 한 일이냐고 감동골 솔밭 속의 아버지와 합장을 해드렸습니다


30촉짜리 전등이라도 하나 넣어드릴걸
평생 어두운 집에서 사시던 분들

 

 

곰배령 돌배나무집  

 

 

봉희네

그해
마구간 딸린 집 한 채에
궁둥이 먼저 디밀어야 하는 뒷간 옆 돌배나무와
애호박처럼 애리애리해도
억척스럽기 칡줄기 같은 처와 함께
어스럭송아지 앞세우고 세간을 났다
스물일곱에 장가 들고 이듬해 봄
양지 쪽 어린 풀포기들 샛바람에 떠는 날
세상 한가운데 나앉았다
한번 시동 걸어놓으면 멈출 줄 모르는 기계처럼
다시 스무 해 넘게 농토에 엎드렸지만
강선리는 자꾸 지구에서 지워져간다
칠 벗겨진 슬레이트 지붕 아래
아직 안테나를 따로 장만치 못해
주말 연속극이 잘 나오지 않는 TV를 들여놓았고
비온 다음날 돌담 밑 원추리 순 돋듯
비수 같은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죽은 땅을 뚫고 올라왔을 뿐
나라가 뒤집어진다 해도 봉희네는 지킬 게 없다

 

 

장작패기  

 

 

봉희 아범


철 이른 눈발이 희뜩희뜩 뒤집어지는 마당에서
봉희 아범은 도끼를 쓸데없이 높이 치켜들고 장작을 팼다
아무리 미련한 짐승이지만
풀 한 포기 없는 겨울이 오는데 많이도 내질렀다고
눈도 못 뜬 것들을 리어카에 싣고 개울에 내다버리고 오던 날
뽕나무 가지에 걸린 비닐종이가 바람에 울고 있었다
인두겁을 쓰고 그렇게 모질면 천벌을 받을 거라고
공연히 돼지우리를 오가며 코를 풀어제치던 봉희 어멈은
눈뗑이가 사뭇 벌겋게 부어 있었다
돼지값이 똥값인데다
조합의 사료 외상도 끊긴 지 오랜데
그깟 놈의 짐승보다 사람이 살고 봐야지
손바닥에 퉤 침을 뱉고 도끼를 내리찍을 때마다
나무 토막들이 살점처럼 튀어올랐다
데몬지 노존지 한다고 생때같은 아이들도 죽여 내다버린다는데
말 못하는 짐승새끼 한 배 내다버린 게 무슨 놈의 천벌이냐고
봉희 아범은 모탕이 뻐개져라고 도끼를 휘둘렀다

 

 

100 국내산 메밀 봉평 국수  

 

 

봉평에서 국수를 먹다


봉평에서 국수를 먹는다
삐걱이는 평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 그릇에 천원짜리 국수를 먹는다
올챙이처럼 꼬물거리는 면발에
우리나라 가을 햇살처럼 매운 고추
숭숭 썰어 넣은 간장 한 숟가락 넣고
오가는 이들과 눈을 맞추며 국수를 먹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들
또 어디선가 살아본 듯한 세상의
장바닥에 앉아 올챙이국수*를 먹는다
국수 마는 아주머니의 가락지처럼 터진 손가락과
헐렁한 티셔츠 안에서 출렁이는 젖통을 보며
먹어도 배고픈 국수를 먹는다
왁자지껄 만났다 흩어지는 바람과
흙 묻은 안부를 말아 국수를 먹는다

 

 

 봄나무 봄비 표현해보기

 

 

봄나무


나무는 몸이 아팠다
눈보라에 상처를 입은 곳이나
빗방울들에게 얻어맞았던 곳들이
오래전부터 근지러웠다
땅속 깊은 곳을 오르내리며
겨우내 몸을 덥히던 물이
이제는 갑갑하다고
한사코 나가고 싶어하거나
살을 에는 바람과 외로움을 견디며
봄이 오면 정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했던 말들이
그를 못 견디게 들볶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헌데 자리가 아플 때마다
그는 하나씩 이파리를 피웠다

 

 

사랑하는 친구야...   

 

 

변명


어느날 새벽에 자다 깼는데
문득 나는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처럼 쓸쓸했다
아내는 안경을 쓴 채 잠들었고
아이들도 자기네 방에서 송아지처럼 자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왔는지 모르지만
그게 식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에게 창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고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해야 했으므로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아, 내가 문을 열어놓고 자는 동안
바람 때문에 추웠던 모양이다,라며
멀쩡한 문을 열었다 닫고는
다시 누웠다

 

 

겨울과 김장의 시기, 입동에 대해 알아보아요!  

 

한노(寒露)


가을비 끝에 몸이 피라미처럼 투명해진다

한 보름 앓고 나서
마당가 물수국 보니
꽃잎들이 눈물자욱 같다

날마다 자고 일어나면
어떻게 사나 걱정했는데

아프니까 좋다
헐렁한 옷을 입고

나뭇잎이 쇠는 세상에서 술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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