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詩

공터를 가진다는 것 /민왕기

청원 이명희 2018. 9. 26. 07:33

 

 

공터를 가진다는 것 /민왕기 책 한 권 남기고 떠난 작가가 적막에 성실했듯이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에 시간이 흐르듯이 쓸쓸함에 성실하면 공터가 생긴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공터 지금 이 공터는 쓸쓸하고 사람에게는 쓸쓸함이 공터였다 아무것도 메워 넣을 수 없는 시간의 공터 그를 읽다 문득 사람이 가진 공터의 평수를 재어보고 어떤 것은 깊고 어떤 것은 널따랗기에 나는 내가 가진 공터나 살피면서 밤을 산책했다 사람이 만나는 일이 공터와 공터가 만나는 일 같기도 하고 서로 공터를 넓히는 사랑을 하나 갖는 것 같아서 누가 떠나면, 둘이 있던 공터에 혼자가 남아 휑한 공터를 열 평쯤 더 늘리게 되겠지 쓸쓸한 사람을 보면 눈매가 시원한 것은 그 사람 공터에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 그 사람 문장과 문장 사이가 멀고 긴 것은 떠난 사람 많아 공터를 넓혀왔기 때문 쓸쓸한 사람 보면, 그의 공터에 들러 바람이나 쐬다 오곤 했다 ㅡ『시인동네』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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