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詩

너에게 쓴다 / 천양희 외 #

청원 이명희 2018. 9. 21. 16:21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 진자리 잎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잎 진자리 새가 앉는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 풍화되었다 천양희, 너에게 쓴다

 

 

 

 

 

 

 

어느 순간, 햇빛이 강렬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럴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잠시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내 사랑도 그렇게 왔다 그대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줄 까맣게 몰랐다 눈이 멀었다 / 이정하

 

 

 

 

 

 

 

멀리서 당신이 보고 있는 달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이 같으니 우리는 한 동네지요 이곳 속 저 꽃 은하수를 건너가는 달팽이처럼 달을 향해 내가 가고 당신이 오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움은 오래되면 부푸는 것이어서 먼 기억일수록 더 환해지고 바라보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꿈속에서 꿈을 꾸고 또 꿈을 꾸는 것처럼 달 속에 달이 뜨고 또 떠서 우리는 몇생을 돌다가 와 어느 봄밤 다시 만날까요 - 아득한 한뼘 / 권대웅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이별이 너무 흔해서 살아갈수록 내 가슴엔 강물이 깊어지고 돌아가야 할 시간은 철길 건너 세상의 변방에서 안개의 입자들처럼 몸을 허문다 옛사랑 추억 쪽에서 불어오는 노래의 흐린 풍경들 사이로 취한 내 눈시울조차 무게를 허문다 아아, 이제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해가 지는 곳 어디쯤에서 그리운 제 별자리를 매달아두었으리라 류근, 그리운 우체국 中

 

 

 

 

 

 

 

문득 가슴이 따뜻해질 때가 있다 입김 나오는 겨울새벽 두터운 잠바를 입고있지않아도 가슴만은 따뜻하게 데워질 때가 있다 그 이름을 불러보면 그 얼굴을 떠올리면 이렇게 문득 살아있음을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사랑해요/원태연

 

 

 

 

 

 

 

국화잎 베개를 베고 누웠더니 몸에서 얼필얼핏 산국 향내가 난다 지리산 자락 어느 유허지 바람과 햇빛의 기운으로 핀 노란 산국을 누가 뜯어주었다 그늘에 며칠 곱게 펴서 그걸 말리는 동안 아주 고운 잠을 자고 싶었다 하얀 속을 싸서 만든 베개에 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아픈 머릴 누이고 국화잎 잠을 잔다 한 생각을 죽이면 다른 한 생각이 또 일어나 산국 마른 향을 그 생각 위에 또 얹는다 몸에서 자꾸 산국 향내가 난다 나는 한 생각을 끌어안는다 조용미, / 국화잎 베개

 

 

 

 

 

 

 

이 세상 가장 먼 길 내가 내게로 돌아가는 길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왔다 내가 나로부터 멀어지는 동안 몸속 유숙하던 그 많은 허황된 것들로 때로 황홀했고 때로 괴로웠다 어느날 문득 내게로 돌아가는 날 길의 초입에서 서서 나는 또 태어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새처럼 분홍빛 설렘과 푸른 두려움으로 벌겋게 상기된 얼굴, 괜시리 주먹 폈다 쥐었다 하고 있을 것이다 이재무, / 먼 곳

 

 

'좋은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터를 가진다는 것 /민왕기  (0) 2018.09.26
이파리 내시경 /최연수  (0) 2018.09.22
너에게 쓴다   (0) 2018.09.17
오늘밤 비 내리고 /도종환  (0) 2018.09.17
시과 / 오봉옥  (0) 2018.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