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증언 / 구석본
내가 없었다
당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향기와 빛깔이 모여 두근거리는 꽃,
그 앞에서 둥글고도 부드러운 나를 흔들기 시작하여
아랫도리부터 머리꼭지까지 흔들어도
당신들의 눈에는 꽃의 향기와 빛깔만 보일 뿐
매끄럽고 은밀한 나의 몸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영혼은 없었다.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던 외로움과 쓸쓸함이
갈퀴를 세우고 짐승처럼 숲 속에서
나무와 나무 사이를 휘저으면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나뭇잎만 있었다.
골짜기마다 스며들어 울음 울지만
절벽마다 소리의 깃발을 내세워
한세상 살아가는 정신으로 펄럭이지만
언제나 당신들의 메아리였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내 몸과 영혼은 허공일 뿐이다.
그 허공 속을
꽃의 향기와 빛깔이 두근거리며 지나가고
당신들의 외로움이나 쓸쓸함도 지나간다.
사실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얗게 지워지는 영상같이
스르르 허공 속으로 스며들어
눈부신 하늘의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월간『현대문학』(20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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