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시조

멸치장국을 우리며/정나영

청원 이명희 2018. 9. 6. 09:16



멸치장국을 우리며/정나영 



가야 할 길이 멀어 생각도 허기진 날

마른 멸치 한 줌으로 장국을 우려낸다

퍼렇게 일어선 물결, 바다도 함께 우린다 


오기도 부끄러움도 끓는 열탕 속으로

한 시대의 사투리가 짤막하게 지나가면

수평 밖 거친 물결도 은빛으로 날이 선다


파도의 등솔기를 갑판 위에 남겨두고

해체된 속살만큼 편서풍에 실려오는

섬 하나 닻을 내리고 가만히 와 앉는다 


정나영 시조집 『별빛도 못 갖춘 마디』, 《목 안 예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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